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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홈플러스가 법원에 전자단기사채(전단채)를 상거래채권으로 분류해 조기 변제를 허용해 달라는 신청을 내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법원도 이 문제를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법조계와 금융권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법리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회생 신청 이후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고 급격한 시장 신뢰 하락을 막으려는 홈플러스와 모회사 MBK파트너스의 ‘진화 전략’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는 회생 신청 직전까지 약 4,019억 원 규모의 전단사채를 발행했고, 이 중 약 3,000억 원이 개인 투자자 자금으로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홈플러스라는 대기업 브랜드와 AAA급 신용등급을 믿고, 이 상품을 예·적금과 유사한 안전한 투자처로 판단해 투자에 나섰다. 일부 고령층과 소액 투자자들은 “은행 상품과 다를 바 없다는 설명을 믿고 투자했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전단사채에 상거래채권적 성격이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일반적으로 회생절차에서는 모든 채권이 ‘회생채권’으로 분류되며, 성격에 따라 크게 상거래채권과 금융채권으로 나뉜다.
상거래채권은 상품 납품, 용역 제공 등 영업활동과 직접 연계된 거래에서 발생한 채권으로, 회생절차 하에서도 기업의 정상 영업 유지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일정 요건 하에 조기 변제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반면, 금융채권은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한 채권으로, 일반적으로 다른 회생채권과 마찬가지로 회생계획에 따라 분할 변제되며, 조기 변제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홈플러스 측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전단사채는 발행 당시 기업의 영업 신뢰를 기반으로 판매되었고, 투자자들이 '거래적 신뢰'를 바탕으로 자금을 제공한 만큼 실질적으로 상거래적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비전문가인 개인 투자자들이 복잡한 금융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마치 ‘안전 자산’처럼 판매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회생절차의 핵심 원칙인 채권자 평등의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
모든 채권자는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하며, 특정 채권자에게만 조기 변제를 허용할 경우, 실제로 기업 영업에 기여해온 납품업체, 협력사 등 거래처들이 상대적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 향후 유사한 회생사건에서도 금융채권이 상거래채권으로 형식만 변경하여 특혜를 주장하는 사례가 속출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실제로 회생법원 실무에서는 회생계획 인가 전 회생채권의 조기 변제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된다는 입장이 견지되고 있다.
회생절차를 관할하는 서울회생법원 등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 해당 채권이 회생기업의 영업 지속에 필수불가결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 조기 변제가 없을 경우 회생계획 수행 자체가 위태로워질 정도의 필수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 다른 채권자들과의 형평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며, 실질적인 회생 이익과 부합해야 한다
또한 금융투자상품과 같이 자본 조달 목적의 단기채권에 대해, 법원이 영업 관련 거래로부터 발생한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기업의 일반적인 영업활동과 실질적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조기 변제를 허용할 근거는 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홈플러스의 조기 변제 신청은 법리보다는 여론 대응적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생 신청 이후 커진 소비자 및 투자자 반발, 정치권의 비판이 격화된 가운데, ‘조기 변제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급한 불을 끄려는 시도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회생제도의 공정성과 일관성은 크게 훼손될 수 있으며, 나아가 회생제도 자체에 대한 시장 신뢰도 흔들릴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약 3,000억 원에 달하는 개인 투자자 손실은 단순한 금융 리스크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고령층과 소액 투자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사안의 무게는 더욱 크다.
결국 법원이 판단해야 할 것은 단지 ‘조기 변제 허용 여부’가 아니다.
법적 원칙, 시장 신뢰, 그리고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 있는 판단을 내리는 일이 중요하다.
법원은 회생제도의 근간인 채권자 평등 원칙을 견지하되, 동시에 소액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 보완책을 정부와 입법부가 함께 모색해야 한다. 조기 변제가 법리상 어렵다면, 정부 차원의 소액 투자자 보호 특별법 제정이나 별도의 보상 프로그램 마련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법의 경계를 지키면서도 사회적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법원의 현명한 판단과, 사회 전체의 책임 있는 대응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