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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사태가 던지는 경고: 이제는 ‘예방적 기업회생제도’가 필요하다

  • 작성자: 김용현 변호사
  • 작성일: 2025-03-24 13:57
  • 조회수: 189

최근 불거진 홈플러스 사태는 우리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의 허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홈플러스는 국내 유통 시장에서 오랜 기간 안정적인 영업기반을 유지해온 대형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모펀드의 인수 이후 차입 매각(LBO, Leveraged Buyout) 구조로 인해 과도한 금융비용을 부담하게 되었고, 여기에 고금리 기조와 부동산 경기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시적인 자산 매각과 차입금 차환 등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며 버텨왔지만, 결국 시장에서는 회생절차 가능성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히 회자되었고, 이로 인해 금융기관과 거래처의 신뢰가 급격히 약화되었다. 기업가치의 훼손은 물론,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선제적 기업회생의 취지와 현실적 한계

 

이 시점에서 다시 주목해야 할 제도는 바로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한 기업회생절차다.

우리 회생제도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34조 제1항에 따라, 기업이 현재 지급불능 상태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지속적인 경영이 불가능할 현저한 가능성이 있을 경우 회생절차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부도 이후의 사후 대응이 아니라, 경영상 위기가 가시화되는 초기 단계에서 법원의 감독 아래 채무를 조정하고, 사업 구조를 재편함으로써 기업을 정상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홈플러스 또한 부채구조와 시장 환경의 구조적 악화를 조기에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회생절차를 신청했다면, 자산의 헐값 매각, 거래선 이탈, 급속한 평판 악화 등 연쇄적 충격을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선제적 회생절차의 활용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절차의 전면 공개와 그로 인한 치명적인 평판 리스크 때문이다.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부터 관련 사실은 공시의무에 따라 시장, 언론, 소비자, 거래처 모두에게 공개된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이러한 정보 노출은 투자자 이탈, 금융기관의 대출 회수, 공급망 단절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많은 기업이 회생절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공개에 따른 즉각적인 피해를 우려하여 위기가 극심해질 때까지 버티는 전략을 택하게 되고, 이는 오히려 기업가치를 더 빠르게 훼손시키는 딜레마를 초래하고 있다.

 

예방적 회생제도: 새로운 회생 패러다임의 필요성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대안이 바로 예방적 기업회생제도(Preventive Restructuring Framework)’.

이미 유럽연합(EU),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기업이 지급불능에 이르기 전 단계에서, 비공개 또는 제한적 공개 방식으로 채권자와 협의를 통해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고 법원의 간이 감독을 받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예컨대 EU2019년 제정된 예방적 구조조정 지침(Directive (EU) 2019/1023)을 통해, 기업이 조기에 구조조정 절차를 개시하고, 법원의 관리 아래 주요 채권자와의 협의를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는 절차를 명문화하였다. 미국 역시 소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Chapter 11 Subchapter V 제도를 통해 신속하고 간이한 구조조정 절차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낙인효과를 최소화하면서도 법원의 감독 기능을 통해 채무조정의 실행력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다.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채권자와 비공개 협의를 통해 변제계획안을 수립하고, 법원은 이를 신속하게 검토해 승인함으로써 기업의 평판과 시장 충격을 동시에 보호하는 방식이다.

 

, 기존 회생절차가 공적 공개법원의 강제적 조정을 전제로 하는 반면, 예방적 회생제도는 기업의 자율성과 신뢰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수준의 공적 통제를 병행할 수 있는 연착륙 구조조정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제도 설계의 방향과 과제

 

우리나라 역시 이제 이러한 예방적 회생제도의 도입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제도 설계 시 다음과 같은 기준이 충족되어야 한다.

 

-현행 회생절차와는 별개로, 지급불능 이전 단계의 기업에 한정하여 신청 자격 부여

-일정 요건 하에서 회생절차 개시 전 단계에서 비공개 채권자 협의 절차 운영

-법원은 변제계획안에 대한 간이 심사 및 승인 권한 부여

-절차의 진행 자체에 대해 공시 예외 혹은 제한 공시 허용

-기업에 대한 관리권 유지 보장 및 투자 유치 가능성 확보

이러한 예방적 회생제도가 도입된다면, 기존 회생절차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던 공개 리스크를 극복하고, 조기에 기업의 사업성과 회생 가능성을 보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홈플러스 사태는 단지 한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 구조조정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한계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사건이다.

고금리, 소비 둔화,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현 시점에서, 이와 유사한 위기를 겪는 기업은 계속해서 증가할 수밖에 없다.

 

너무 늦기 전에, 조용히 그러나 체계적으로 회생할 기회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뿐 아니라 금융시장 전체의 안정을 위한 핵심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이제는 우리 기업과 금융시장 모두가 예방적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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